발행인 김상복 목사
다시 생각해 보라(2022년 2월)
작성자
한국오늘의양식사
작성일
2022-01-28 04:22
조회
963
다시 생각해 보라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고난일 것이다. 지금까지 피해왔다면 다행이지만 언젠가는 찾아온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신음”한다(로마서 8:22).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난 후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이 불안과 두려움과 죽음의 세력 앞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3년째 곤경에 처해 있다.
예레미야의 애가처럼 “고난과 재난 곧 쑥과 담즙”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것만 보고 있으면 낙심과 고통이 오고 고통이 길어지면서 “나의 힘도 하나님에 대한 나의 소망”도 끊어진 듯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속에 다시 생각한 즉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예레미야애가 3:18,19,21). 첫 번째 생각은 본능적인 생각이다. 거기서 그치지 말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 영적인 조망이 필요하다. 땅만 내려다보고 살면 고통과 낙심뿐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두 번째 생각, 즉 영적인 생각을 하면 낙심이 사라지고 희망이 보인다. 육적인 생각은 낙심이지만 영적인 생각은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인다 –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신실하심”(예레미야애가 3:23). 왜 새 해와 새 날을 주시는가? – 오늘을 새롭게 살라고.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마태복음 6:34).
날이 밝으면 하나님께서 오늘 필요한 새로운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께로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생긴다. 아침마다 새 희망, 새 힘이 솟아오른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고 구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베푸신다. 그래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고백한다(예레미야애가 3:24~26). 처음의 생각은 우리를 흑암에 빠뜨려도 다시 생각해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이고 그 분의 은혜를 기다릴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반드시 나타난다. 이 신앙적 고백에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와 회복과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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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 보라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고난일 것이다. 지금까지 피해왔다면 다행이지만 언젠가는 찾아온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신음”한다(로마서 8:22).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난 후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이 불안과 두려움과 죽음의 세력 앞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3년째 곤경에 처해 있다.
예레미야의 애가처럼 “고난과 재난 곧 쑥과 담즙”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것만 보고 있으면 낙심과 고통이 오고 고통이 길어지면서 “나의 힘도 하나님에 대한 나의 소망”도 끊어진 듯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속에 다시 생각한 즉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예레미야애가 3:18,19,21). 첫 번째 생각은 본능적인 생각이다. 거기서 그치지 말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 영적인 조망이 필요하다. 땅만 내려다보고 살면 고통과 낙심뿐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두 번째 생각, 즉 영적인 생각을 하면 낙심이 사라지고 희망이 보인다. 육적인 생각은 낙심이지만 영적인 생각은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인다 –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신실하심”(예레미야애가 3:23). 왜 새 해와 새 날을 주시는가? – 오늘을 새롭게 살라고.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마태복음 6:34).
날이 밝으면 하나님께서 오늘 필요한 새로운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께로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생긴다. 아침마다 새 희망, 새 힘이 솟아오른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고 구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베푸신다. 그래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고백한다(예레미야애가 3:24~26). 처음의 생각은 우리를 흑암에 빠뜨려도 다시 생각해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이고 그 분의 은혜를 기다릴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반드시 나타난다. 이 신앙적 고백에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와 회복과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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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고난일 것이다. 지금까지 피해왔다면 다행이지만 언젠가는 찾아온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신음”한다(로마서 8:22).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난 후 전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이 불안과 두려움과 죽음의 세력 앞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3년째 곤경에 처해 있다.
예레미야의 애가처럼 “고난과 재난 곧 쑥과 담즙”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것만 보고 있으면 낙심과 고통이 오고 고통이 길어지면서 “나의 힘도 하나님에 대한 나의 소망”도 끊어진 듯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속에 다시 생각한 즉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예레미야애가 3:18,19,21). 첫 번째 생각은 본능적인 생각이다. 거기서 그치지 말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 영적인 조망이 필요하다. 땅만 내려다보고 살면 고통과 낙심뿐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두 번째 생각, 즉 영적인 생각을 하면 낙심이 사라지고 희망이 보인다. 육적인 생각은 낙심이지만 영적인 생각은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인다 –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신실하심”(예레미야애가 3:23). 왜 새 해와 새 날을 주시는가? – 오늘을 새롭게 살라고.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마태복음 6:34).
날이 밝으면 하나님께서 오늘 필요한 새로운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께로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생긴다. 아침마다 새 희망, 새 힘이 솟아오른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고 구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베푸신다. 그래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고백한다(예레미야애가 3:24~26). 처음의 생각은 우리를 흑암에 빠뜨려도 다시 생각해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이고 그 분의 은혜를 기다릴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반드시 나타난다. 이 신앙적 고백에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와 회복과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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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애가처럼 “고난과 재난 곧 쑥과 담즙”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것만 보고 있으면 낙심과 고통이 오고 고통이 길어지면서 “나의 힘도 하나님에 대한 나의 소망”도 끊어진 듯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속에 다시 생각한 즉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예레미야애가 3:18,19,21). 첫 번째 생각은 본능적인 생각이다. 거기서 그치지 말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 영적인 조망이 필요하다. 땅만 내려다보고 살면 고통과 낙심뿐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두 번째 생각, 즉 영적인 생각을 하면 낙심이 사라지고 희망이 보인다. 육적인 생각은 낙심이지만 영적인 생각은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인다 –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신실하심”(예레미야애가 3:23). 왜 새 해와 새 날을 주시는가? – 오늘을 새롭게 살라고.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마태복음 6:34).
날이 밝으면 하나님께서 오늘 필요한 새로운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께로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생긴다. 아침마다 새 희망, 새 힘이 솟아오른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고 구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베푸신다. 그래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고백한다(예레미야애가 3:24~26). 처음의 생각은 우리를 흑암에 빠뜨려도 다시 생각해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이고 그 분의 은혜를 기다릴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반드시 나타난다. 이 신앙적 고백에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와 회복과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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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애가처럼 “고난과 재난 곧 쑥과 담즙”과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것만 보고 있으면 낙심과 고통이 오고 고통이 길어지면서 “나의 힘도 하나님에 대한 나의 소망”도 끊어진 듯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속에 다시 생각한 즉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예레미야애가 3:18,19,21). 첫 번째 생각은 본능적인 생각이다. 거기서 그치지 말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 영적인 조망이 필요하다. 땅만 내려다보고 살면 고통과 낙심뿐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두 번째 생각, 즉 영적인 생각을 하면 낙심이 사라지고 희망이 보인다. 육적인 생각은 낙심이지만 영적인 생각은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지만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무궁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인다 – “아침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신실하심”(예레미야애가 3:23). 왜 새 해와 새 날을 주시는가? – 오늘을 새롭게 살라고.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마태복음 6:34).
날이 밝으면 하나님께서 오늘 필요한 새로운 “긍휼과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께로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생긴다. 아침마다 새 희망, 새 힘이 솟아오른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고 구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베푸신다. 그래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고백한다(예레미야애가 3:24~26). 처음의 생각은 우리를 흑암에 빠뜨려도 다시 생각해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이고 그 분의 은혜를 기다릴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반드시 나타난다. 이 신앙적 고백에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치유와 회복과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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