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김상복 목사
3.1운동 공로자 허대전 박사를 기린다.(3월)
작성자
한국오늘의양식사
작성일
2019-03-15 09:58
조회
1530
3.1운동 당시 일본 경찰의 포악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견딜 수 없어 동경에 가서 일본 총리를 만나 강하게 항의한 미국 선교사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역사를 위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은 제이 고든 홀드크로프트(한국명 허대전) 박사님이십니다.
허 박사님은 1902년 한국에 선교사로 오셔서 1940년까지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운동을 일으키며 주일학교연합회장으로 오랜 세월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일본 신사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1940년 강제 출국당해 귀국 후 미국 장로교 독립선교회(IBPFM) 회장으로 평생 섬기셨습니다. 제가 1965년 8월 유학생으로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그 분 댁에서 첫 주 동안 머물며 많은 대화를 나누던 중 허 박사님이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대한독립만세 광경과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참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총리를 만나 모든 사진을 보여주며 강하게 항의하셨다고 합니다. 총리는 허 박사에게 호텔에 가서 기다리라 하고는 며칠 후 편지를 보내어 그런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조사해서 적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평양에 돌아오자 얼마 안 있어 일본 총리는 군인 출신 조선총독을 민간인 총독으로 경질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허 박사님께서 그 일본 총리의 편지를 아직도 갖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천장을 가리키며 오래 전에 다락방에 올려놓았는데 찾아보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편지는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하니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나 저도 공부 때문에 다른 주로 이사를 다녔고 결국 제가 그 편지를 입수하지 못한 채 허 박사님은 92세에 천국으로 이주하셨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그 편지를 확보하지 못한 후회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늦었지만 3.1절 100주년에 홀로 일본 총리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항의해 주신 허대전 박사님을 한국교회에 알립니다. 그 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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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일본 경찰의 포악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견딜 수 없어 동경에 가서 일본 총리를 만나 강하게 항의한 미국 선교사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역사를 위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은 제이 고든 홀드크로프트(한국명 허대전) 박사님이십니다.
허 박사님은 1902년 한국에 선교사로 오셔서 1940년까지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운동을 일으키며 주일학교연합회장으로 오랜 세월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일본 신사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1940년 강제 출국당해 귀국 후 미국 장로교 독립선교회(IBPFM) 회장으로 평생 섬기셨습니다. 제가 1965년 8월 유학생으로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그 분 댁에서 첫 주 동안 머물며 많은 대화를 나누던 중 허 박사님이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대한독립만세 광경과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참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총리를 만나 모든 사진을 보여주며 강하게 항의하셨다고 합니다. 총리는 허 박사에게 호텔에 가서 기다리라 하고는 며칠 후 편지를 보내어 그런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조사해서 적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평양에 돌아오자 얼마 안 있어 일본 총리는 군인 출신 조선총독을 민간인 총독으로 경질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허 박사님께서 그 일본 총리의 편지를 아직도 갖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천장을 가리키며 오래 전에 다락방에 올려놓았는데 찾아보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편지는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하니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나 저도 공부 때문에 다른 주로 이사를 다녔고 결국 제가 그 편지를 입수하지 못한 채 허 박사님은 92세에 천국으로 이주하셨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그 편지를 확보하지 못한 후회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늦었지만 3.1절 100주년에 홀로 일본 총리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항의해 주신 허대전 박사님을 한국교회에 알립니다. 그 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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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박사님은 1902년 한국에 선교사로 오셔서 1940년까지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운동을 일으키며 주일학교연합회장으로 오랜 세월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일본 신사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1940년 강제 출국당해 귀국 후 미국 장로교 독립선교회(IBPFM) 회장으로 평생 섬기셨습니다. 제가 1965년 8월 유학생으로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그 분 댁에서 첫 주 동안 머물며 많은 대화를 나누던 중 허 박사님이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대한독립만세 광경과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참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총리를 만나 모든 사진을 보여주며 강하게 항의하셨다고 합니다. 총리는 허 박사에게 호텔에 가서 기다리라 하고는 며칠 후 편지를 보내어 그런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조사해서 적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평양에 돌아오자 얼마 안 있어 일본 총리는 군인 출신 조선총독을 민간인 총독으로 경질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허 박사님께서 그 일본 총리의 편지를 아직도 갖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천장을 가리키며 오래 전에 다락방에 올려놓았는데 찾아보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편지는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하니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나 저도 공부 때문에 다른 주로 이사를 다녔고 결국 제가 그 편지를 입수하지 못한 채 허 박사님은 92세에 천국으로 이주하셨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그 편지를 확보하지 못한 후회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늦었지만 3.1절 100주년에 홀로 일본 총리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항의해 주신 허대전 박사님을 한국교회에 알립니다. 그 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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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늘의양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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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일본 경찰의 포악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견딜 수 없어 동경에 가서 일본 총리를 만나 강하게 항의한 미국 선교사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역사를 위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은 제이 고든 홀드크로프트(한국명 허대전) 박사님이십니다.
허 박사님은 1902년 한국에 선교사로 오셔서 1940년까지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운동을 일으키며 주일학교연합회장으로 오랜 세월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일본 신사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1940년 강제 출국당해 귀국 후 미국 장로교 독립선교회(IBPFM) 회장으로 평생 섬기셨습니다. 제가 1965년 8월 유학생으로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그 분 댁에서 첫 주 동안 머물며 많은 대화를 나누던 중 허 박사님이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대한독립만세 광경과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참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총리를 만나 모든 사진을 보여주며 강하게 항의하셨다고 합니다. 총리는 허 박사에게 호텔에 가서 기다리라 하고는 며칠 후 편지를 보내어 그런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조사해서 적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평양에 돌아오자 얼마 안 있어 일본 총리는 군인 출신 조선총독을 민간인 총독으로 경질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허 박사님께서 그 일본 총리의 편지를 아직도 갖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천장을 가리키며 오래 전에 다락방에 올려놓았는데 찾아보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편지는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하니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나 저도 공부 때문에 다른 주로 이사를 다녔고 결국 제가 그 편지를 입수하지 못한 채 허 박사님은 92세에 천국으로 이주하셨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그 편지를 확보하지 못한 후회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늦었지만 3.1절 100주년에 홀로 일본 총리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항의해 주신 허대전 박사님을 한국교회에 알립니다. 그 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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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늘의양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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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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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일본 경찰의 포악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견딜 수 없어 동경에 가서 일본 총리를 만나 강하게 항의한 미국 선교사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역사를 위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은 제이 고든 홀드크로프트(한국명 허대전) 박사님이십니다.
허 박사님은 1902년 한국에 선교사로 오셔서 1940년까지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운동을 일으키며 주일학교연합회장으로 오랜 세월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일본 신사참배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1940년 강제 출국당해 귀국 후 미국 장로교 독립선교회(IBPFM) 회장으로 평생 섬기셨습니다. 제가 1965년 8월 유학생으로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그 분 댁에서 첫 주 동안 머물며 많은 대화를 나누던 중 허 박사님이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대한독립만세 광경과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참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총리를 만나 모든 사진을 보여주며 강하게 항의하셨다고 합니다. 총리는 허 박사에게 호텔에 가서 기다리라 하고는 며칠 후 편지를 보내어 그런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조사해서 적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평양에 돌아오자 얼마 안 있어 일본 총리는 군인 출신 조선총독을 민간인 총독으로 경질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허 박사님께서 그 일본 총리의 편지를 아직도 갖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천장을 가리키며 오래 전에 다락방에 올려놓았는데 찾아보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편지는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하니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나 저도 공부 때문에 다른 주로 이사를 다녔고 결국 제가 그 편지를 입수하지 못한 채 허 박사님은 92세에 천국으로 이주하셨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그 편지를 확보하지 못한 후회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늦었지만 3.1절 100주년에 홀로 일본 총리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항의해 주신 허대전 박사님을 한국교회에 알립니다. 그 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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