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손길과 함께 하시는 주님!

작성자
odbkorea
작성일
2016-06-15 09:41
조회
2465
3개월 전 ‘오늘의 양식’을 배부하기 위해 운전을 하고 가면서 차 바닥에 떨어진 ‘오늘의 양식’을 집으려는 순간 ‘쿵’ 소리가 나면서 자전거와 사람이 동시에 2∼3m를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이 운전석에서 보였다. 순간 ‘이것이 교통사고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멍해졌다.

차 문을 열고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가는 나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무겁다.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으로 옮길 준비를 하는데 그 분이 혼자 일어나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길 건너편 원주소방서에서 현장을 목격한 소방관도 걱정이 되었는지 그래도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해 준다. 잘 아는 정형외과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한 결과 원장님 말씀이 “권 권사님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역시 헌신으로 봉사를 하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양입니다” 하셨다. 안도와 감사가 내 마음을 채웠다.

그러나 더 놀라운 섭리는 내 차에 치인 분은 목수 중에서 대목으로 일을 하시면서 무료급식을 하는 「십시일반」에서 적극적으로 봉사를 하고 계신 분이었다. 사고의 순간을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사고로 인하여 봉사를 하는 좋은 분을 만날 수 있도록 예비하셨고 학생들과 함께 봉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주신 주님께 영광을 드린다.

운전한 지 26년 만에 처음으로 위험천만이었던 사고를 낸 후부터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과연 얼마나 봉사를 열심히 했을까? 무슨 봉사를 했을까? 축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무슨 축복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숙여지고 쏟아지는 감격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이 작은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사랑하는 우리 ‘오늘의 양식’ 가족과 함께 겸손한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남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다. 학창시절 운동선수로 활약하면서도 배불리 먹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잘 먹고 운동을 했더라면 나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을지도 모른다는 욕심을 내보기도 한다.

나에게 봉사의 의미와 봉사의 길을 알려주신 분은 영적인 아버지이신 서울 임마누엘교회 김국도 목사님이시다. 20여 년 전 태백에 있는 황지여자상업고등학교에 체육교사로 근무를 하던 나에게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마사이족에게 운동을 가르쳐보라는 말씀하셨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려고 했으나 아내의 걱정과 눈물로 인하여 포기했다. 5년이 지난 후에 함백고등학교로 전근 온 후, 돈이 없어서 점심을 먹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중식비를 지원해 달라고 목사님께 편지를 했더니 교인 50여분과 함께 찾아오셔서 도움을 주셨고 그 일로 인하여 마사이족에게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되었다. 마사이족에게 하나님을 증거 하는 안찬호 선교사님과 다른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참다운 선교와 봉사가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었다.

나는 전근 가는 학교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불우학생, 문제아들을 중심으로 봉사를 통한 인성교육에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결과 이곳 안흥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봉사를 잘 한다고 푸르덴셜에서 주최하는 전국중고생 자원자대회에서 2년 연속으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상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폭력성도 없어지고 영혼이 맑고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담배나 술을 먹는 학생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이 부족해도 그 자체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변화가 온 것이다.

“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봉사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진정한 봉사의 땀방울은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주말이 없다. 학생들과 함께 독거 어르신, 천사들의 집, 십시일반, 장주기요셉재활원에 다니고 있다. ‘오늘의 양식’을 매 달 2천부씩 배부한지도 5년이 되고 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고백에 감사한다.
나는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서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나면 아프리카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마사이 학생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다 그 땅에서 죽고 싶다. 요즘 아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빠! 내가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아프리카로 가면 아빠를 묻어드리고 나도 나중에 아빠 옆에서 잠들게요”라고 한다. 이 말에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행복의 눈물이 눈가에 이슬 맺힌다.

늘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봉사하면서 받은 사랑이 너무도 많아서이다.

첫째가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여년이 넘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싶었다.

둘째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올해 수석으로 합격을 한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의학대학교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실망하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마사이 친구들에게 가서 40여일을 봉사하다가 돌아왔다. 아들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재도전을 하겠다고 했고 재수했으나 역시 의대는 낙방이 되었다. 차선책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 가기로 결심을 하고 가천의과학대에 입학을 해서 4년간 열심히 노력을 했다. 그 결과 합격을 했는데 오히려 4년간 아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셨다고 믿고 있다. 아프리카 선교를 통하여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목적이 확실하게 정립이 되었다. 목표가 정해진 학생은 90%의 성공을 했다고 나는 본다. 문제가 있는 학생이나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을 데리고 가고 싶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남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고 남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을 하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자식이 부모에게 살아생전 효도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하고 싶다. 지금까지 부모의 말에 거역하거나 불손종한 것이 한 번도 없다. 항상 “네. 아빠, 네. 엄마”이다.

셋째로 강원도에서 교감 승진하기가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하는데 올 여름방학에 난 무사히 교감연수를 한 달간 마쳤다. 연수원의 개보수로 인하여 비합숙으로 실시되는 교육이었는데 피서 기간 중이어서 연수원이 위치한 강릉에서는 방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방 때문에 한참 고생하고 있었는데, 오늘의 양식사를 섬기는 집사님의 도움으로 좋은 방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사랑하고 믿는 자들 간의 교통함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넷째로 미술교사인 아내가 평창중학교에서 2년 만에 원주로 발령을 받았다. 원주 전입 8순위이므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기적처럼 8명 모두가 발령이 났다.

다섯째 10년간 아프리카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하심이다. 가끔은 아내가 교육공무원 월급으로는 너무 힘이 든다면서 가계부가 마이너스라고 투정을 하지만 방학이 되면 빚을 내서라도 선교비를 준비해주는 아내에게 감사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더 오래 가 있고 싶다.

10년 전 마사이 초등학생이 5천m를 14분대에 달리는 모습을 보고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옥수수죽도 하루에 한 끼 먹기 힘든 그들이지만 영양식을 공급하면서 훈련하면 세계적인 선수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 케냐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처음 갔을 때 예견했던 일이다. 마사이 학생들 중에서도 세계를 제패하는 선수를 만들어 내고 싶다.

한 번 갈 때마다 한 사람당 5백만 원 이상 지출이 되지만 계속하고 싶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아내랑 함께 갔었다. 아내는 마사이의 광야를 다니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들을 보면서 감명을 받기도 했고 무지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 새사람이 된 놀라운 사건에 감격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하는 말이 “당신이 얼마나 이들을 잘 섬겼으면 내가 왔다고 여왕처럼 대접을 하느냐”고 엉엉 울었다.

이처럼 열심히 봉사와 선교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부족한 나를 위해 기도와 물질로 2년 동안이나 지원해 주신 할렐루야교회 김상복 담임목사님께 무릎 조아리고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목사님 덕분에 마음껏 학생중식지원과 독거어르신 돕기를 할 수 있었고 아껴서 케냐 마사이학생들에게 축구공도 몇 개씩 사 갈 수 있었다. 이런 회상을 하고 있자니 자꾸만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뭉클 뭉클해지는 것은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아 행복해지는 까닭인 것 같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학생들을 더 사랑하리라 마음먹어 본다. 봉사는 사람을 확실하게 변화를 시켰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난 감히 말하고 싶다. 버림받을 학생은 하나도 없고 쓸모없는 학생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들이 인정을 받지 못했고 자신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알지 못할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다.

봉사를 하다 보니 날마다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때론 힘들고 움직일 수 없는 피로의 중압감이 날 짓누르지만 나로 인하여 한번 크게 웃을 수 있는 여린 영혼이 있는 한 난 기어서라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 주님은 날 위해서 돌아가시기까지 하셨는데 조금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또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봉사를 하다 보니 자식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나에게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에 난 한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다시 두 무릎으로 기도한다. 항상 겸손하고 온유하게 해 달라고.
주님 사랑해요

권오승(권사, 오늘의 양식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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