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3:1-12
-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 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 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 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 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 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538.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구, 32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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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 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새사람 되기를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2. 정결케 되기를 원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생명수 마시기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3. 진실한 친구를 원하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네 맘에 평안을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4. 즐거운 찬송을 하려거든 네 맘속에 주 영접하며 평안한 복지에 가려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후렴)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 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11월 29일 •금요일
접근 금지 명령
성경읽기 : 에스겔 35-36; 베드로후서 1
새찬송가 : 538(통327)
오늘의 성경말씀 : 욥기 13:1-12
참으로 나는…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욥기 13:3)
한 남자가 법정에 하나님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특히 불친절하게” 행동하고 “심각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을 심리한 판사는 소송을 기각하면서 그 사람은 법정이 아니라 정신 건강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습지만 서글픈 실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라고 아주 다를까요? 가끔씩 우리도 “하나님, 제발 그만 하세요. 이미 충분해요!”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욥이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고발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엄청난 자신의 비극을 겪은 욥은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욥기 13:3)고 하면서 “하나님께 변론할”(9:3)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접근 금지 명령까지 내밀었습니다.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이니이다”(13:21). 욥의 기소는 자신의 결백보다는 하나님의 불합리한 가혹함을 보고 그것을 따져 묻기 위함이었습니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10:3).
가끔 우리는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욥의 이야기는 복잡하여 쉬운 답을 제시해 주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욥의 물질적인 부귀를 회복시키시지만, 이런 결말이 항상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아닙니다. 아마도 우리는 욥이 마지막으로 시인하며 했던 말에서 어떤 판결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3).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으며, 거기에 놀라운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법정에 불러냈습니까”? 왜 하나님께 어려운 질문을 해도 괜찮습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가끔은 제가 견뎌내야 했던 일들에 대해 화가 납니다. 저의 불평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FRIDAY, NOVEMBER 29
RESTRAINING ORDER
BIBLE IN A YEAR : EZEKIEL 35-36; 2 PETER 1
TODAY’S BIBLE READING: JOB 1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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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argue my case with God himself. [ JOB 13:3 NLT ]
A man in court filed a restraining order against God. He claimed God had been “particularly unkind” to him and had exhibited a “seriously negative attitude.” The presiding judge dismissed the suit, saying the man needed help not from the court but for his mental health. A true story: humorous, but also sad.
But are we so different? Don’t we sometimes want to say, “Stop, God, please, I’ve had enough!” Job did. He put God on trial. After enduring unspeakable personal tragedies, Job says, “I want to argue my case with God himself” (JOB 13:3 NLT) and imagines taking “God to court” (9:3 NLT). He even puts forth a restraining order: “Withdraw your hand far from me, and stop frightening me” (13:21). Job’s prosecution argument wasn’t his own innocence but what he viewed as God’s unreasonable harshness: “Does it please you to oppress me?” (10:3).
Sometimes we feel God is unfair. In truth, the story of Job is complex, not providing easy answers. God restores Job’s physical fortunes in the end, but that isn’t always His plan for us. Perhaps we find something of a verdict in Job’s final admission: “Surely I spoke of things I did not understand, things too wonderful for me to know” (42:3). The point is, God has reasons we know nothing of, and there’s wonderful hope in that. KENNETH PETERSEN
What occasions have prompted you to “take God to court”? Why is it okay for you to ask Him tough questions?
Dear God, I sometimes feel angry about what I’ve had to endure. Please help me bring my complaints to You.
오늘의 성경말씀(욥기 13장 1-12절) : 친구들의 잘못된 산앙관을 책망하는 욥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욥13:3-4)
주님! 욥은 자신도 친구들 만큼 알고 있으며, 전능자 하나님과 변론하겠다고 말합니다(1-3절) 욥에게 친구들은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쓸데없는 의원일 뿐입니다. 친구들이 하나님을 위해 변론할지라도 그들의 말은 재 같은 속담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합니다(4-12절) 아멘!
주님!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은 , 자기를 위로하기 보다는 정죄하는 친구들과의 논쟁을 피하고 전능자 하나님과 변론(대화)을 시도하고 있습니다(3절)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변호한다는 몀목으로 진실을 왜곡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친구들을 거짓 위로자요, 쓸모 없는 의원이라고 비난하면서(4절) 친구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편견없는 증인으로서 역할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7-12절) 아멘!
주님! 인생최대의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은 전능자 하나님과 변론하겠다고 합니다. 대화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과 다투어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에 사람과 많은 말을 하기보다 하나님과 더 많이 대화를 해야만 하는데 그 대화가 바로 기도인줄 믿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도 어려움를 당할 때에 하나님께 적극적인 기도(대화)를 드리기 보다는 ,사람의 지헤와 말을 듣기에 더욱 노력했던 것을 고백하며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역경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참 믿음의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십자가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께 기도하며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지혜로는 전능자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고난의 혼돈 속에서 두렵고 떨리고 불안해진 우리의 이성과 판단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선한길로 인도하여 주실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10:2)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벼려 두지 마옵소서”(시141:8)
Even a man as patient as Job was human. Going through unimaginable and unexpected tragedies, he sought for a reason why he was suffering. His friends jabbed him under the assumption there a rhyme and reason for the events. At times there are reason we cannot comprehend. The value of learning through difficult experiences, questioning God, and ultimately understanding that there is no indecision in His path for us. Father, I’ve asked you why and on many occasions. Some you have answered and others I still seek from you. Let that desire burning in my heart not dilute the patience in me to stays trust in your judgment for me.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