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감동

작성자
odbkorea
작성일
2016-06-15 12:59
조회
2320
윌슨 전 미국대통령은 이렇게 자신의 연설 준비시간을 말했다. “연설 길이에 따라 다르지요. 10분짜리 연설이면 1주일 준비하고, 15분짜리는 3일 준비, 30분짜리는 이틀 준비, 1시간짜리 연설은 언제라도 준비 없이 할 수 있지요.”

짧은 연설일수록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설교에 적용한다면 짧은 설교일수록 오래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글이 더 쓰기가 어렵고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얼마 되지 않는 지면에 전하려고 하는 핵심을 다 넣고 감동까지 주려면 다듬고 또 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의 양식’ 하루치는 분량이 얼마나 될까. 한글 기준으로 200자 원고지 5장쯤 된다. A4용지로 따지면 반 장이 조금 넘는다. 이 짧은 글 안에 그 날 성경 본문, 제목, 요절, 예화, 설명, 요점 또는 적용, 기도나 시, 그리고 잠언 같이 한 문장으로 된 명상의 글이 있다. 좁은 지면인데도 들어갈 것은 빠짐없이 다 들어간 것이다. 필진에 따라, 날짜에 따라 빛깔과 맛은 다르지만, 나는 ‘오늘의 양식’을 읽을 때마다 진한 감동을 받는다. ‘오늘의 양식’ 덕분에 매일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본다(시 34:8).

신문기사로 치면 미니 칼럼 정도의 분량밖에 안 되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서론이 길거나 초점 없이 장황설을 늘어놓다가는 금세 원고 제한 매수를 넘어서고 만다. 짧은 글을 쓸 때, 같거나 비슷한 말을 되풀이하는 중언부언은 절대 금물이다. 군더더기를 없애지 않고는 분량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탁월한 작가라도 처음부터 원고지 5장 분량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의 초고를 써놓은 다음에 줄이고 또 줄이고, 고치고 또 고친다. 영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분도 아마 여러 번 문장을 손질할 것이다.

흔히 글 쓰는 일은 사람의 피를 말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오늘의 양식’ 필자들이 피를 말려가며 요리한 음식을 나는 단지 20원 정도의 싼 값을 치르고 날마다 받아먹는 것이다. 브랜드 커피 한 잔에 몇 천 원 하는 요즘에 이처럼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영의 양식’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랜드 커피 사마시는 것을 즐겼으나 이제는 그 돈을 아껴 ‘오늘의 양식’을 보급하는 문서선교에 사용하기로 맘먹었다. 정치를 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분에게도 보내드린 적이 있다.

근년 들어 ‘오늘의 양식’ 필자는 더 다양해졌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기독교 칼럼니스트인 필립 얀시(Phillip Yancey)가 최근 가세했고, 그 얼마 전부터는 싱가포르인인 히아(C.P. Hia)가 글을 쓴다. 특히 히아는 한국과 같은 유교문화권 출신일 뿐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가 합세함으로써 나로서는 그동안 양식만 먹다가 중식도 먹고, 전문요리사가 만든 음식만 먹다가 평범한 주부가 차린 음식도 먹게 된 기분이다. 하나님 말씀의 다양하고도 풍성한 맛을 만끽하게 됐다고나 할까.

‘오늘의 양식’ 하루치를 다 읽는 데는 3분이면 족하다. 영문과 한글을 둘 다 읽으면 6분 정도 걸린다. 영문을 두 번 읽고 한글을 한 번 읽어도 10분이 채 안 걸린다. 하루 10분이면 하루를 버티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 은혜도 받고 영어공부도 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이다. 미국 연수 시절 한인교회에서 ‘오늘의 양식’을 처음 만난 이래 8년째 이 복을 누리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오늘의 양식’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나의 영적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동반자이다.

심양섭(교수,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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